올림픽 무역 VIP 계정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2월 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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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공식 앰블럼 대회 공식 마스코트

개 최 기 간 : 1988.09.17-10.02.
참 가 국 : 160개국
참가선수단 : 13,304명
운 영 인 원 : 운영요원 49,712명
자원봉사자 27,221명
기 본 이 념 : 화합과 전진
대 회 목 표 : 최다의 참가,최상의 화합,최고의 성과,최적의 안전,최대의 절약
종 목 수 : 정식 23종목,
시범 2종목, 시범세부 1종목,
전시 1종목,전시세부 1종목

기 록 수 : 세계신기록 33개
세계타이기록 5개
올림픽신기록 227개
올림픽타이기록 42개 수립
최 종 순 위 : 1. 소 련 - 금 55 은 31 동 46 합계 132
2. 동 독 - 금 37 은 35 동 30 합계 102
3. 미 국 - 금 36 은 31 동 27 합계 94
4. 한 국 - 금 12 은 10 동 11 합계 33
5. 서 독 - 금 11 은 14 동 15 합계 40

1988년의 제24회 하계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자는 운동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박종규씨가 제25대 대한체육회회장(KOC위원장 겸임)으로 취임하면서였다. 박종규 위원장은 대한사격연맹 회장이던 1978년 서울에서 세계사격선수권대회(9월 24일 - 10월 5일 태릉종합사격장)를 성공적으로 치뤄내면서 올림픽도 개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 실제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기간중 한국을 방문했던 많은 세계사격계의 VIP들이 "한국은 올림픽을 치를 만한 능력이 있다"는 찬사를 당시 박정희대통령과 박위원장에게 잇따라 보내왔었다.

박종규위원장은 1979년 2월 체육회장 겸 KOC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조상호 김세원의 두 전직대사를 부회장으로 맞아들여 스포츠외교력을 강화하고, KOC 안에 실무연구반으로 전문위원실을 설치, 올림픽유치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3월에는 제24회 올림픽 서울유치건의안을 문교부에 제출했다.


문교부는 정책적인 뒷받침을 위해 올림픽유치에 필요한 경기장과 숙박시설, 운송수단을 비롯하여 대회유치에 따른 득식 및 가능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보완자료를 제출토록 KOC에 요구하는 한편, 경제기획원, 외무부등 관계기관의 의견도 청취했다. 주일대사관을 통해 일본의 64년 도쿄올림픽 관련자료를 수집해 자체적인 검토를 하기도 했다.


문교부는 79년 8월 3일 올림픽 유치 문제를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에 상정했고, 이 심의위원회는 안건의 중요성을 감안한 끝에 7인소위원회를 구성, 좀더 구체적인 검토를 거쳐 결정하기로 의결했다.


신현환경제기획원장관을 위원장으로 박찬현 문교부장관, 박종진 외무부장관, 정상천 서울특별시장, 윤일균 중앙정보부차장, 박종규 KOC위원장, 김택수 IOC위원으로 구성된 7인소위원회는 79년 8월 22일 첫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는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의 성과를 재검토한 뒤, 과중한 국민부담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국민총화와 대공산권교류 및 대북한 우위확보를 위해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민제육진흥심의위원회는 79년 9월 3일 서면결의로 제24회 올림픽의 서울 유치계획을 의결했고 9월 21일에는 박정희대통령의 제가가 나왔다.


79년 10월 8일 정상천 서울특별시장은 박종규 KOC위원장, 김택수 IOC위원, 정주영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박충훈 한국무역협회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88년 제24회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겠다고 정식 발표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8일 뒤 "10.26사태"가 일어나 올림픽유치운동은 일단 잠잠해지게 됐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결단을 내렸던 박정희대통령이 타계했고, 올림픽유치운동을 주도하던 박종규 위원장도 정치적 상황의 변동으로 체육행정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나 체육회, KOC안에서 올림픽 유치에 대한 소극론이 대두됐고, 최규하대통령권한대행의 과도정부도 회의적인 처지였다.


1980년 9월 1일 제11대 전두환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올림픽유치계획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박종규 위원장의 뒤를 이은 조상호 체육회장 겸 KOC위원장은 올림픽유치계획에 대한 KOC의 공식의견을 조정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첫 회의를 80년 9월 29일에 개최했다.


11월 26일 소집된 KOC긴급확대상임위원회는 올림픽유치의 타당성과 시의성을 검토한 끝에 "올림픽개최는 국가의 대외이미지 개선과 대공산권 외교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할 것이며, 설령 유치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올림픽유치후보국으로서의 명예가 남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측은 "올림픽유치의 최종 결정은 정부가 검토 판단해야 할 사항이나 서울시의 재정등 제반여건을 감안할 때, 88년 올림픽 개회 시기까지 제반시설을 갖추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되므로 제24회 올림픽을 유치할 수는 없다."고 문교부에 통고했다.


문교부는 서울시의 반대 주장도 첨부해 올림픽유치의 타당성 조사경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전두환대통령은 "전임대통령이 결심하여 국내외에 공표한 중대사항을 별다른 이유없이 변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역사적인 사업을 추진해 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패배의식 속에서 물러나서는 안된다."고 유치결의를 밝혔다.


대통령으로부터 강력한 올림픽유치 지시를 받은 문교부는 KOC에 "정부의 기본방침에 변동이 없으므로 서울시와 협의하여 올림픽유치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IOC에 제24회 올림픽 유치의사를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사태의 급진전을 맞은 KOC실무진은 80년 12월 3일부터 뉴델리에서 개최된 AGF총회에 참석중인 조상호위원장에게 보고하는 한편, 델렉스를 이용한 결재를 받아 IOC본부의 모나코 베를리우 사무총장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KOC는 1988년 제24회 올림픽 개최 후보도시로 서울시를 지지하기로 결정했으며, 정식신청서는 추후 제출하겠음" 12월 4일 IOC는 한국의 수도 서울이 일본의 나고야(名古屋)시와 함께 제24회 올림픽의 공식유치 신청도시가 되었음을 발표했다.


80년 12월 15일, IOC본부는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서울시가 이미 확보한 시설과 앞으로 건설할 계획인 경기장, 대회경비 및 대회운영에 관한 총괄계획 등 150항목에 달하는 질문서와 함께 "이 질문서에 대한 답변서와 유치신청서를 1981년 2월 28일까지 제출하라."는 공한을 KOC에 보내왔다.


문교부는 서울시 실무자들과 KOC전문위원들로 올림픽 유치신청서 작성반이 구성된 것이 해를 넘긴 81년 1월 6일이었는데, 이렇게 늦어진 데는 서울시측의 소극적인 자세가 걸림돌이었다. 거의 KOC전문위원들에 의해 작업은 진행되었고, 40여일간의 밤샘 작업 끝에 영어판 190페이지, 불어판 16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답변서가 작성됐고, 이를 IOC의 요구대로 완성된 3백권의 책으로 인쇄를 끝낸 것은 신청마감 불과 4일 전인 2월 24일 이었다.


이 방대한 부피의 답변서를 우송할 경우 도저히 마감시한까지 로잔 IOC본부에 도착시킬 수가 없어 실무자 3명이 직접 운송하기로 했다. 2월 25일 서울을 떠난 답변서 운송팀은 이튿날 제네바에 도착, 주제네바대표부의 협조로 신청서와 함께 답변서를 IOC본부에 제출할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이아의 멜버른이 유치표기를 공식 발표하고, 올림픽 영구 개최론을 들고나왔던 그리스의 아테네가 신청서의 제출을 포기함으로써, 88년 제24회 올림픽유치경쟁은 서울과 나고야의 대결로 압축됐다.


로잔의 IOC본부는 3월 11일자 전문을 통해 IOC와 세계올림픽연합회(ANOC)및 국제경기연맹(ISF)조사단을 서울세 파견한다고 통보하고, 조사단이 반한할 때 서울의 기존스포츠시설과 숙박시설을 비롯한 도로교통망, 경기장건설현황, 언론관계시설 등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제출할 것을 요청하여 왔다.


54년 주한미군에 배속되어 2년동안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을 보았고, 스탠드도 엉성한 서울운동장야구장에서 경기를 한 경험마저 있던 밀러는 25년만에 다시 본 서울의 발전상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KOC관계자의 안내로 건설중인 올림픽 주경기장과 태릉국제사격장 및 선수촌 등을 둘러보고 지하철 시승까지 하는 등 사전조사단으로서의 임무를 빈틈없이 수행한 밀러일행은, 서울의 무서운 추진력에 감탄하고 올림픽 개최 능력을 확신하게 됐다.


이어 4월에는 IOC조사단, 6월에는 ISF조사단이 각각 내한,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전두환대통령의 강력한 올림픽 유치결심을 확인한 문교부의 새로운 훈령에 따라 체육계의 올림픽유치활동은 아연 활기를 띄게 됐다.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할 바덴바덴 IOC총회는 81년 9월 30일에 열리게 돼어있으니 2개월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KOC는 81년 7월 11일 베네주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범미주올림픽연합총회에 직업외교관 출신의 전상진부위원장을 옵서버로 파견, 12명의 IOC위원과 접촉케 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7월 12일에는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북중미 및 유럽 순방교섭길에 올라 해외 태권도사범들의 헌신적인 협조를 받으며 IOC위원 13명과 접촉하여 서울지지를 호소했다. 그 때까지 한국이 올림픽유치신청만 해놓고 사실상 유치를 철회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IOC위원들은 김총재의 서울 지지요청에 대해 한국이 조속히 대대적인 유치활동을 펼치지 않으면 나고야에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147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총회에는 사마란치 위원장을 비롯한 IOC위원등 전세계 체육지도자가 대거 참가해 있었다. 이처럼 중요한 회의에서 먼저 연설한 일본대표가 사전 준비없이 2,3분동안 간단히 나고야 지지를 호소한데 반해, 조위원장의 상세하고 성의있는 연설은 서울에 대한 여론환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됐다.


외무부는 이에 앞서 5월 25일 IOC위원이 거주하는 나라의 공관에 올림픽유치교섭을 올림픽 무역 VIP 계정 벌이도록 지시하고 교섭상황과 IOc위원들의 동향을 계속 보고하도록 했다. 이 훈령에 따라 재외공관원들이 펼친 활동은 그때까지 한국의 올림픽 유치 진의를 의심하던 많은 IOC위원들에게 유치의사를 명백히 인식시켰고, 각종 정보의 수집분석 및 설득작전 등으로 올림픽 유치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8월 1일 문교부는 그때까지 외무부의 재외공관과 체육인을 통해 펼친 올림픽유치 활동의 성과를 중간 점검했다. 우리가 접촉한 50여명의 IOC위원중 5명이 한국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지원표명 16명, 호의적 고려 16, 중립 16명으로 분석됐다.


미주지역과 대양주의 IOC위원들은 대체로 서울에 호의적이었으나 공산권과 유럽 및 중동지역 IOC위원들은 나고야 쪽으로 기운 듯했다. 아프리카와 남미지역위원들은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었다.


나고야는 79년 9월부터 81년 5월까지 1년 9개월동안 세계 각국의 IOC위원들을 방문하거나 일본으로 초청하여 환대하면서 꾸준히 득표활동을 벌인데 비해, 서울쪽은 유치교섭과 홍보활동 면에서 아직 미약한 실정이었다.


일본은 자신만만하였고 우리는 정부안에조차 서울유치에 회의적인 각료들이 있는 실정이었다.
81년 8월경, 노태우 제2정무장관은 나름대로 문교부, 이무부, KOC로부터 그동안의 유치활동 및 IOC위원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한 결과 "앞으로 한달동안 거국적인 유치활동을 펼치면 나고야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고 이를 전대통령에게 보고했다.


9월 1일 이규호 문교부장관도 청와대를 방문,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전대통령은 "제24회 올림픽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서울로 유치해야 한다."면서 유치활동의 총사령탑에 노태우 제2정무장관을 지명했다.

노장관의 지휘를 받게 된 올림픽유치특별대책반은 바덴바덴 IOC총회 기간동안 현지에서 활동할 유치대표단을 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바덴바덴총회를 3주일 앞두고 구성된 유치대표단은 체육관계인사는 물론 재계의 유력인사, 정부관계인사, 언론인 등 107명의 대규모로 짜여졌다.


공식대표는 박영희서울시장을 단장으로 조상호 KOC위원장, 정주영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이원경 KOC상임고문, 유창순 한국무역협회장, 이원홍 한국방송공사사장등 6명이었고, 올림픽총회대표는 김택수 IOC위원,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전상진 KOC부위원장, 최만립 KOC명예총무 등 4명이었다.

이밖에 재계 지원단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등 7명, KOC지원단 김세원 KOC부위원장 등 9명, 실무지원단 이선기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등 21명, 일반지원단 박종규 전KOC위원장등 16명이었다.
유치대표단이 바덴바덴으로 출발하기 직전 실무대책반이 최종적으로 점검한 IOC위원들의 성향을 보면 예상투표자 82명중 한국지지 26명, 호의적 고려 6명, 중립 34명, 반대 16명으로 분석됐다. 그때까지 확실한 태도를 밝히지 않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출신 IOC위원들을 어떻게 포섭하느냐에 승패가 갈랄 전망이었다.

투표권을 행사하는 IOC위원들은 물론이고, 국제경기연맹회장단 및 IOC위원들과 친분이 두텁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각국 NOC위원장단, 그밖에 국제스포츠사회에서 막후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도 교섭대상에 포함시켰다. 81년 9월 18일 서울을 떠난 유치단은 20일 바덴바덴에 도착, 드디어 "바덴바덴 10일 작전"의 막을 올렸다. 그러나 현지 분위기는 서울 유치단의 사기를 위축시켰다. 완전히 "나고야 우세"로 기울어져 있었다.


특히 현지 언론들은 서울유치단에게 극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서울이 과연 IOC위원 몇 명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라고 논평했으며, IOC수뇌진도 제24회 올림픽의 나고야 개최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올림픽전시관이 개관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9월 22일 오전, 바덴바덴시의 옛철도역 자리에 펼쳐진 제24회 올림픽 유치 신청 도시들의 전시관 개관식이 예상 밖의 파문을 몰고 왔다.


88년 하계올림픽을 신청한 서울과 나고야, 동계올림픽을 신청한 캘거리(캐나다), 팔룬(스웨덴), 코르티나 탐페쪼(이탈리아) 등 5개 도시가 준비한 전시관이 일제히 문을 열었을 때, 서울관의 짜임새있는 전시내용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99m²정도의 좁은 공간에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의 모형도를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와 발전상을 패널과 슬라이드가 조화를 이루며 소개하고 있었고, 영상비디오는 뉴욕이나 도쿄에 손색없는 현대 도시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관의 인기를 더욱 높인 것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에 능한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5명과 미스코리아출신 안내양 3명이었다. 이들은 우아한 한복차림으로 서울관을 찾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한 서비스로 안내해 주었다. 반면 일본 나고야관은 사진위주의 평면적인 전시인데다 일본항공 스튜어디스들이 근무복 차림으로 안내를 맡아 서울관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조상호 KOC위원장,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비롯한 전상진 KOC부위원장, 최만립 KOC명예총무, 방종규 전KOC위원장 등은 능란한 외국어 실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활용하면서, 그동안 국제스포츠외교무대에서 쌓아올린 교분을 바탕으로 정렬적인 유치활동을 펼친 끝에 예상을 웃도는 큰 성과를 올렸다. 나고야측이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진 이른바 "바덴바덴 드라마"는 8월 3일 김운용, 전상진 2인이 선발대로 서울을 떠나면서 비롯됐다.


김총재는 호신용 스포츠로 범세계적인 인기를 끌로 있던 태권도의 "대부"라는 점을 활용, 북 중미 및 유럽의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를 순방하면서 해외사범들의 협조아래 그 지역 IOC위원들에게 서울올립픽 지지를 호소했다.


70년대 초반 카메룬대사를 지낸 적이 있는 전 부위원장은 케냐, 이집트, 튀니지를 돌고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바덴바덴으로 들어가면서 그 지역 IOC위원들은 물론 체육계 정부 고위인사와 연쇄 접촉하고 서울지지를 요청했다.


조상호 위원장은 바덴바덴에 도착한 다음날인 23일 사마란치 IOC위원장을 예방, 국제정치적 상황 때문에 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던 IOC수뇌진의 견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고, 25일에는 중동스포츠계의 실질적 리더인 쉐이크 파하드 쿠웨이트 NOC위원장과 요담, 아랍 출신 IOC위원들 사이에 서울지지 세력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상진, 최만립씨 등은 23일 저녁 서독대통령주최 리셉션, 27일 스트라스부르 관광여행, 28일 바덴바덴시장 주최 리셉션 등 각종 공식 비공식행사장을 최대한 활용, IOC위원들과 각국 NOC위원장단 및 국제경기연맹회장단긍과 접촉하면서 서울 지지 세력을 넓혀갔다.

이같은 일련의 유치활동성과는 28일 전상진 KOC부위원장이 주최한 스페인어권 대표들을 위한 리셉션에 남미출신 IOC위원 전원과 포르투갈 IOC위원 등 50여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는 노르웨이 출신 IOC위원 스타우보로부터 북한이 서울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 유치대표단의 정책수립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바덴바덴 유치대표단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총수 등 경제인들의 활약도 매우 돋보였다. 정 회장은 전국역제인연합회 회장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행정관, 외교관, 경제인, 체육인 등 이질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유치단의 팀워크를 이끄는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영어네 능한 유창순 무역협회회장과 콤비를 이뤄 유럽지역 IOc위원들 사이에 영량력이 큰 영국의 엑세터 위원과 서독의 바이츠 위원을 설득했다. 탁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은 스웨덴의 칼그렌, 에릭슨 위원을 서울지지세력으로 끌어들였고, 프랑스의 두 IOC위원을 맡은 조중훈 대한항공사장은 엘조그위원이 긴여행에서 돌아와 바덴바덴 도착이 늦어지자 파리로 날아가 엘조그위원을 모셔오기도 했다.
이처럼 재벌총수들이 미지의 스포츠세계에 뛰어들어 해외에 뿌리내린 자체 기업세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많은 IOC외원들을 서울 지지세력으로 확보한 것은 "바덴바덴 드라마'의 전기를 마련한 튼 성공작이었다. 투표일을 하루 앞둔 9월 29일 IOC총회에서 있은 올림픽유치신청도시의 설명회는 그때까지 중립적 입장이었던 IOc위원들의 표향방을 결정지은 중대한 행사였다.

설명회를 맡은 서울과 나고야 유치단의 자세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승리를 기정사실로 믿고 승전무드에 젖어있던 나고야 대표단이 설명회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은데 반해, 서울대표단은 올림픽 무역 VIP 계정 최후의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서울대표단은 특히 제안연설이 끝난 뒤 있을 IOC위원들과 옵서버들의 질문에 완벽하게 답변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를 했다. 서울에서 준비해온 150여개의 질문 및 답변 문안을 놓고 여러차례 토론을 벌였는가 하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문까지 점검하는 완벽을 기했다.


나고야측의 설명의 있은 뒤 오후 2시부터 서울유치단의 설명회가 계속 됐다. 박영수 서울시장이 유치신청도시 시장으로서 인사말을 안데 이어, 조상호 KOC위원장이 제24회 올림픽의 서울개최 타당성을 역설하는 제안연설을 했다.


약 30분간에 걸쳐 13명의 IOC위원 및 국제경기연맹회장단의 질문이 이어졌다. 설명회가 끝나자 서울유치단에 호의적이었던 20여명의 IOC위원들이 다가와 "아주 훌륭한 설명회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9월 30일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오후2시, 80명의 IOC위원들은 제24회 올림픽개최 신청을 낸 서울과 나고야 중 한쪽을 택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 외부와의 출입이 통제된 쿠르하우스 회의실에 모였다. 그로부터 1시간 40분되 사마란치 위원장이 위원들의 투표결과 집계표를 들고 발표장에 나타났다. "서울 52, 나고야 27"
예상을 뛰어넘는 서울의 압승이었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역사적인 선언에 현지 대표단은 물론 자정이 넘어 TV실황중계를 지켜보던 전국의 온 국민들도 이 엄청난 차이의 승리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덴바덴 현지의 기자회견장은 만세와 환호성으로 뒤범벅이 됐고 태극기가 물결쳤다. 바덴바덴의 감격과 열광은 전파를 타고 한반도까지 출렁였다.

그로부터 7년동안 한국 국민들은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하나가 됐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제24회 올림픽개최지 결정투표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IOC가 제24회 올림픽대회의 개최지로 한국의 수도 서울을 택한 것은 올림픽정신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그만큼 제24회 올림픽의 서울개최가 지니는 의미는 큰 것이었다.









그룹 "코리아나"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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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무역 VIP 계정

[트래블바이크뉴스=임요희 기자] 세계 최고의 체육행사가 우리나라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봄 여행지를 검색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겨울의 끝자락 2월을 동계올림픽과 보냈다면 3월에는 미술 올림픽이 열리는 홍콩을 방문해보자.

국제 무역도시 홍콩은 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뛰어난 교통 인프라로 세계 유수의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가고시안, 영국의 화이트큐브, 프랑스의 페로텡 아시아 지점이 모두 홍콩에 있다.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

매년 3월이면, 전 세계 문화예술 애호가들이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홍콩 문화예술의 달’(HONG KONG ARTS MONTH)을 맞아 세계적인 미술행사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기 때문이다.

2013년 첫 선을 보인 이후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2017년 관람객 수가 8만 명에 이른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은 세계적인 미술 애호가, 미술계 인사, 셀러브리티가 해마다 찾고 있어 더욱 화제가 되고 있이다.

재작년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작년에는 베컴이 참석했으며 올해는 우리나라 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소식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아트바젤 홍콩은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을 무대로 오는 3월 29일(목)부터 31일(토)까지 사흘 간 개최된다.

20세기 초 모던 아트의 걸작들부터 세계 유수의 컨템퍼러리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행사는 3월 27일(화)과 28일(수) 양일은 VIP 대상 프리뷰로, 3월 28일(수)에는 베르니사지(vernissage) 이벤트로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진행한다.

32개국 지역 248개의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한국 갤러리인 갤러리 바톤(Gallery Baton), 조현 갤러리(Johyun Gallery), 대구의 우손 갤러리(Wooson)가 처음으로 아트바젤 홍콩 전시자 표찰을 손에 쥐었다.

특히 대구 우손 갤러리의 참석은 괄목할 만한 사건으로 서울 유수의 갤러리조차 입성하지 못한 가운데 지방 갤러리가 이룩한 쾌거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

눈여겨 볼 전시로 ‘인사이트’ 섹터의 대만 모던아트 선두주자인 추웨이보(Chu Weibor )와 퐁총레이(Fong Chung Ray) 듀오 쇼와 상하이 화랑 뱅크(Bank)가 소개하는 중국작가 쉬빙(Xu Bing)의 목판화 작품 ‘산산히 부서진 옥(Shattered Jade)’프로젝트 등이 있다.

홍콩 하버프론트에서 만나는 ‘아트센트럴’

104개의 세계 유수의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센트럴(ART CENTRAL) 아트페어가 오는 3월 27일(화)부터 4월 1일(일)까지 홍콩 하버프론트 대형 천막 전시장을 무대로 개최된다.

특히 행사 전날 열리는 VIP 프리뷰/First Night 행사는 26일(월)부터 시작되는 홍콩 아트 위크(Hong Kong Art Week)의 첫날을 즐길 좋은 기회이다.

아트센트럴은 아트바젤 홍콩과 함께 홍콩을 대표하는 아트페어로 4년만에 빠르게 성장해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참여 갤러리의 80% 이상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갤러리들로 한국에서는 갤러리 현대, 카이스 갤러리(CAIS Gallery)가 참석한다.

아트 센트럴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하버프론트에서 펼쳐지는 ‘페어 다이닝’. 홍콩의 핫한 레스토랑이 참여하는 스트리트 푸드 센트럴(Street Food Central)은 홍콩의 미식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홍콩 미술의 중심 ‘센트럴 갤러리 디스트릭트’

홍콩 센트럴은 홍콩 미술계의 심장으로 유수의 갤러리들이 앞 다투어 홍콩에 진출하면서 센트럴 갤러리 디스트릭트(CENTRAL GALLERY DISTRICT)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센트럴 한복판인 80 퀸즈로드 센트럴(80 Queen’s Road Central)에 아트&라이프스타일 빌딩인 H Queen’s 빌딩이 새롭게 문을 열며 센트럴 갤러리 디스트릭트를 한층 빛내고 있다.

홍콩의 저명한 건축가인 윌리엄 림(William Lim)이 디자인한 H Queen’s 빌딩은 건축 초기 단계부터 갤러리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 높은 층고를 자랑한다.

특히 15층과 16층에 위치한 영국의 하우저&워스(Hauser&Wirth) 갤러리는 1992년 설립된 이후 런던, 뉴욕, 서머셋, 로스앤젤레스, 개스타드 지역에도 속속 오픈, 60명이 넘는 전속작가를 보유한 정상급 갤러리이다.

하우저&워스는 홍콩 개관전으로 57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개인전을 준비했다.

그밖에 가고시언 갤러리, 리만 머핀 갤러리, 한아트 TZ 갤러리 등이 자리 잡은 홍콩 센트럴의 대표적인 아트빌딩인 ‘페더빌딩’과 화이트큐브와 갤러리 페로탱이 위치한 ‘중국농업은행빌딩’ 역시 프리미어 전시를 보기 위해 꼭 체크해야 하는 장소이다.

화이트큐브 갤러리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전시를 개최한다. 자신의 몸을 직접 캐스팅한 인물상으로 유명한 안토니 곰리는 1994년 터너상 수상자로 끊임없이 몸을 탐구하고 그를 감싸는 공간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한편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맞추어 홍콩 갤러리들이 동시에 전시 오프닝 리셉션을 개최하는 ‘갤러리 나이트’는 센트럴의 갤러리들을 돌아보기 가장 좋은 이벤트로 올해는 3월 26일(월) 저녁에 동시다발로 열린다.

빅토리아피크의 명물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빅토리아 피크 중간에 위치한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ASIA SOCIETY HONG KONG)은 바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홍콩 도심 속 오아시스로 푸른 자연이 함께하는 곳이다.

19세기 중반 영국 군부의 탄약고였던 이곳은 현재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는 7월 15일까지 ‘LOVE’ 조각으로 유명한 미국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Long: Robert Indiana and Asia’가 전시되며 한국 작가 장영혜의 ‘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를 비롯해 8명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다문화적 성격의 이번 전시는 언어에 대한 작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탐구를 드러내고 있다.

경극부터 재즈, 발레까지 ‘홍콩 아트페스티벌’

아트바젤 홍콩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시각예술 축제라면 홍콩 아트페스티벌(Hong Kong Arts Festival )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연예술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46회째를 맞이하는 홍콩 아트 페스티벌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세계 정상급 공연예술을 선보인다.

3월 한 달간 홍콩 전역을 배경으로 오페라, 연극, 음악, 댄스 등 총 130개의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으로 10만개 티켓 중 50% 이상이 선예약으로 판매됐다.

그중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American Ballet Theatre)의 ‘Whipped Cream’는 2017년 봄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MET 봄 시즌 하이라이트로 초연되어 많은 갈채를 받은 작품으로 알렉세이 라트만스키(Alexei Ratmansky)의 연출 아래 아시아 프리미어로 선보인다.

중국의 문화예술의 진수인 중국 국립 경극사(China National Peking Opera Company) 역시 놓칠 수 없다. 올해는 새롭게 창핑 공주(Princess Changping)의 경극버전을 선보인다고 한다.

캐나다 뉴 서커스의 계보를 잇고 있는 7Doigts(세븐 핑거스)와 덴마크의 리퍼블리크 씨어터가 공동 제작한 아크로바틱 서커스 보스 드림즈(Bosch Dreams) 역시 관람객을 환상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홍콩 아트 페스티벌 플러스는 대형 공연 외에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 워크숍 및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준비해두고 있다.

지하철로 접근하는 ‘웡척항 아트갤러리’

홍콩섬 남부, 산업 빌딩이 가득한 웡척항 지역의 아트 공간은 홍콩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레인 크로포드 백화점의 국제적인 디자이너 가구와 조명을 만날 수 있는 샵까지 위치하고 있을 만큼 웡척항은 홍콩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재미있는 동네이다.

교통 소외 지역이었던 이곳이 지난해 사우스 아일랜드 노선(South Island Line)이 개통하면서 홍콩 초행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센트럴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갤러리들이 이주하며 생성된 웡척항 아트 갤러리 지구는 산업빌딩의 곳곳에 숨겨져 있어서 방문할 때마다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다.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맞추어 이 지역 갤러리들 역시 오프닝 파티 및 리셉션을 진행하니 아트 갤러리를 돌아보며 웡척항의 매력적인 밤을 느껴보자.

중국 베이징에서 온 Pekin Fine Arts, 히말라야, 인도, 중앙아시아 미술 중심으로 갤러리를 운영하는 영국 출신의 Rossi & Rossi, 사진 전문 갤러리 Blindspot Gallery는 놓치지 말고 체크해야 할 프로그램.

홍콩 구시가지 삼수이포의 '스트리트 아트'

한편 3월 홍콩 문화예술의 달을 맞이하여 홍콩 카오룽 지역의 최대 거리시장인 삼수이포(Sham Shui Po)에서도 스트리트 아트를 중심으로 홍콩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삼수이포는 몽콕의 야시장에 비해 홍콩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홍콩에서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구시가지에 속한다.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셔틀 아트(Shuttle Arts) 프로그램은 국내 여행자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갈 것이다. 행사 기간 동안 무료 셔틀을 운행한다.

홍콩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이벤트로 자리 잡은 홍콩의 아트 먼스(ARTS MONTH). 3월 여행지로 홍콩을 강추하는 이유이다.

Binance에서 두 가지 주목할만한 이벤트가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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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낸스 P2P, 플래시 세일 데이 프로그램 출시-BTC 구매시 10 %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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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지역 무역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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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라운드

07 년 00 월 30 일 오전 10 시부 터 2020 년 07 월 00 일 오전 11시 (베트남 시간)까지 진행됩니다.

이 라운드에서 플레이어는 해당 국가에서 상위 25 위 트레이더가되기 위해 경쟁하게됩니다. 각 국가의 상위 25 명은 보상을 받게되며 Binance는 25 명의 행운의 플레이어를 무작위로 선택하여 20 인당 XNUMX USD BNB의 보상을받습니다.

상위 25 위에 속하고 플레이어의 ROI가 양수이면 두 번째 라운드로 이동합니다. 상위 25 위의 트레이더는 자국을 대표하는 팀을 구성하여 SEA 지역의 다른 국가 팀과 경쟁하게됩니다. 마지막으로 토너먼트 참가 등록을하신 분들은 자동으로 본 토너먼트에 참가하게됩니다.

[김과장&이대리] "VIP 잘 모셔라"…공항 활주로까지 응급차로 마중, '볼일' 보고 나온 상사에게 손수건 건네는 '화장실 의전'도

[김과장&이대리]

한 번 잘 ‘모신’ 의전이 열 번 잘한 업무보다 낫다. 김과장 이대리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푸념이다. 상하관계와 접대 문화를 중요시하는 한국 직장사회에서 의전은 매우 민감한 업무 중 하나로 꼽힌다. 얼마나 잘했는지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하고 악몽이 되기도 한다. 의전하는 상사의 직급이 높을수록 ‘양날의 칼’은 더욱 예리해진다. 회장·사장급 상사의 의전을 앞둔 직원들이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전 최고봉은 공항 의전

공항 의전은 ‘의전 중 의전’으로 꼽힌다. 한 은행 홍콩법인장이던 김모씨는 몇 년 전 신임 행장 박모씨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사의 비서실과 인사팀을 탐문해 어느 정도 의전을 해야 할지를 살폈다. 예전 행장만큼은 의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고, 그는 조용히 입국심사대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문제는 박 행장이 비행기 일등석에서 다른 한국 대기업의 정모 사장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목적지인 홍콩에 다다른 뒤 함께 비행기에서 나왔지만, 입국심사대에서부터는 길이 갈렸다. 정 사장은 입국장 안까지 들어온 자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심사 없이 일명 ‘VIP 코스’로 빠져나갔지만, 박 행장은 20분여를 기다려 입국심사를 받았다. 한 달 뒤 은행 인사에서 김씨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국내 지방 지점으로 발령받았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항 의전에 사활을 건다. 한 대기업 영국법인장이던 박모씨는 10여년 전 전용기를 타고 온 회장을 태우기 위해 공항 활주로까지 앰뷸런스와 승용차를 몰고 들어갔다. 공항 측과 관계가 좋았던 그는 “회장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회장은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차를 탈 수 있게 되자 매우 만족해했다. 이 소식이 퍼지면서 다른 해외 법인들은 크게 동요했다. “어떻게 차를 타고 활주로까지 들어갔냐”며 낙담한 것이다. 일부 법인은 공항 보안담당자들과 친해지기 위해 각종 물품을 건네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의전은 직급과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한 중견기업에서는 회장이 귀국하는 시간에 맞춰 20~30명에 달하는 직원을 공항에 대기시키곤 한다. 임원뿐 아니라 부·차장급까지도 ‘회장님 마중’에 동원된다. 귀국 시간은 대부분 이른 새벽이다. 이 회사의 박모 부장은 “조만간 회장님의 해외 출장이 있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돈다”며 울상을 지었다. “경쟁사 회장님은 혼자서도 잘 다니던데, 가끔은 우리 회장님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의전은 자발적으로 했을 때 더 멋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는 장례식·결혼식도 ‘일’

직장에서는 경조사도 업무의 일환이 된다. 건설업체 총무부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장례식장 지원’이 큰 골칫거리다. 회사 임원이 상(喪)을 당하면 올림픽 무역 VIP 계정 매번 지원을 나가야 하는 관례가 있어서다. 조문객맞이, 신발 정리와 같은 일을 하다보면 어느덧 새벽까지 시간이 훅 흘러가 있다.

가장 괴로운 점은 장례식 의전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것. 데이트 약속을 앞두고 급히 불려나간 통에 화가 난 여자친구를 달래느라 고생한 적도 여러 번이다. 김 과장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임원의 상가까지 지원을 나가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선배들은 ‘우리도 그래왔다’며 막무가내로 지시하는데, 혼자 빠질 수도 없고 피곤하다”고 말했다.

상사를 위해 지방 장지까지 따라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원 사이에선 불만이 많지만 행여나 불똥이 튈까 실제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다. “어쩌겠어요. 가욋일이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만 더 받아요. 그냥 업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요.”

본의 아니게 ‘내 결혼식’에서까지 의전을 하게 된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사내 커플인 김모씨(33)와 박모씨(29)는 지난해 말 ‘악몽의 결혼식’을 올렸다. 비서로 일하는 박씨가 한 임원에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것이 원인이었다.

결혼식 당일 신랑인 김씨는 손님을 맞는 와중에도 임원이 올 시간에 맞춰 식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도착 후 대기할 때는 신부인 박씨가 옆에서 말동무를 하며 음료를 접대했다. 식이 끝난 뒤에는 임원을 배웅하고 인사를 드리느라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단체사진 촬영이 지연되기까지 했다. 김씨는 “내 결혼식을 치른 것인지 임원을 행사에 모시고 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앞으로의 회사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탄했다.

스포츠 의전부터 화장실 의전까지

의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 상사에서 일하는 올림픽 무역 VIP 계정 정 과장은 최근 한 임원의 ‘의전 무용담’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실력보다는 의전으로 승진 가도를 달린 것으로 유명한 그 임원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의전 중 하나로 화장실 의전을 꼽았다. 상사가 화장실에 가면 자신도 화장실 앞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볼일’을 마친 상사에게 준비한 손수건을 건네는 식이다. 그는 ‘진짜 볼일’을 보러 갈 때도 화장실에 다른 부서 등의 상사가 오지 않는지를 살펴 똑같은 서비스를 한다고 했다.

스포츠광인 회장을 모시는 한 대기업 비서팀 공 차장은 올림픽·월드컵 때마다 ‘자리 맡기’에 열을 올린다. 후원·협찬을 통해 VIP석 표를 받는 것은 쉽다. 문제는 이런 자리가 지정석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이다. 회장은 VIP석 중에서도 경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공 올림픽 무역 VIP 계정 차장은 직원 몇몇과 경기 시작 두세 시간 전부터 몰래 VIP석에 잠입하기로 했다. 좋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회장이 다가오면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한 번은 해외의 올림픽 경기장에 미리 앉아 있다가 검문을 당해 쫓겨난 적도 있다.

한 중견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김모 대리(35)는 최근 골프 연습에 땀을 흘리고 있다. ‘골프 없는 골프 의전’에 지쳐서다. 지난해 김 대리는 한 달에 두 번씩 주말마다 골프장으로 출근했다. 그는 골프를 할 줄 몰랐지만, 영업에 도움이 된다는 부서장의 말에 무작정 부서장의 골프 의전에 나섰다. 그는 주말마다 부서장의 차를 운전해 골프장까지 함께 향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골프가 끝나면 업체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다시 부서장을 집까지 바래다줬다. 그래도 처음에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참았다. 다양한 업체 대표들을 만날 수 있었고, 부서장 역시 그를 높게 평가해서다.

하지만 골프를 치는 동안의 시간은 점점 더 그에게 고역이 돼갔다. 칭찬을 받은 탓에 의전을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는 아예 골프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김 대리는 “겨울이 되면서 골프 약속이 사라지니 지금은 매우 편해졌다”고 털어놨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외부 사람을 위한 의전에도 신경 써야 한다. 서울의 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정모씨(29)는 지난 1주일 동안 해외 바이어 의전을 하느라 녹초가 됐다. 유럽에서 온 바이어는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할랄 음식을 파는 식당을 수소문하는 등 식사 장소를 잡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서울에 처음 온 바이어의 ‘1일 가이드’도 정씨 몫이었다. 정씨는 서울 여행 가이드북을 구매한 뒤 바이어의 스케줄에 맞춰 서울 여행 동선을 짰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보고 싶다는 말에 서울 강남 한류거리도 일정에 넣었다. 정씨는 “서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이번처럼 서울 공부를 많이 한 건 처음”이라며 “외국인 바이어가 한국인보다 신경 쓸 게 많아 의전이 까다로운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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